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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븐도 케이크 틀도 없는 좁은 원룸 주방. 프라이팬 하나와 볼 하나만 꺼내 놓고도 손바닥만 한 크레이프를 한 장씩 부쳐 스무 겹을 쌓아 올리면, 칼을 넣는 순간 결이 선명하게 드러나는 크레이프 케이크가 완성된다. 베이킹이 부담스러웠던 사람도 “이건 부침개 부치듯 하면 되는구나” 싶어지는 메뉴다.
크레이프 케이크는 밀 크레프(Mille crêpes), 즉 “천 겹의 크레이프”라는 이름처럼 얇은 크레이프 여러 장 사이에 생크림을 발라 켜켜이 쌓아 만든다. 오븐으로 굽는 과정이 없어 도구 부담이 적고, 실패해도 한 장만 다시 부치면 되기 때문에 홈카페 입문용으로 자주 추천된다. 아래 7단계만 순서대로 따라가면 된다.
1단계. 재료와 반죽 비율 잡기
지름 20cm 팬 기준으로 크레이프 20장 분량의 반죽 비율은 다음과 같다. 박력분 180g, 우유 600ml, 달걀 5개, 설탕 35g, 녹인 무염버터 30g, 소금 한 꼬집. 우유와 밀가루의 비율이 약 3:1이 되도록 잡으면 종이처럼 얇게 펴지는 묽은 반죽이 나온다.
가운데 채울 크림은 생크림(동물성) 500ml에 설탕 40g을 넣고 단단한 뿔이 설 때까지 휘핑한다. 딸기, 망고 같은 제철 과일을 사이에 넣으면 단면 색이 살아난다. 크레이프 자체는 단맛이 약하므로 크림 당도로 전체 균형을 맞추는 편이 낫다.
2단계. 반죽 섞고 체에 거르기
볼에 달걀과 설탕, 소금을 먼저 풀고 우유를 절반쯤 넣어 섞는다. 여기에 박력분을 체 쳐 넣고 거품기로 멍울이 없어질 때까지 젓는다. 처음부터 우유를 다 넣으면 가루가 뭉치기 쉬우니, 되직하게 섞어 멍울을 푼 뒤 남은 우유와 녹인 버터를 마지막에 합치는 순서가 안전하다.
완성된 반죽은 한 번 더 고운체에 거른다. 이 한 단계가 크레이프 표면을 매끈하게 만드는 핵심이다. 반죽 농도는 수저로 떴을 때 끊기지 않고 쭉 흘러내리는 정도여야 하며, 너무 되면 우유를 한 큰술씩 더해 조절한다.
3단계. 반죽 휴지시키기
거른 반죽은 랩을 씌워 냉장고에서 최소 30분 휴지시킨다. 시간이 있다면 하룻밤 재워도 좋다. 휴지는 단순히 기다리는 시간이 아니다.
밀가루에 물을 더하면 글루테닌과 글리아딘이 결합해 탄력 있는 글루텐 막이 형성되는데, 반죽을 쉬게 하면 이 글루텐 네트워크가 재정렬되며 과도한 긴장이 풀린다. 동시에 밀가루 입자가 수분을 고르게 흡수해 반죽이 안정된다. 그 결과 부칠 때 덜 찢어지고, 다 식은 뒤에도 쫀쫀하게 결을 유지한다.
반죽이 쉬는 동안 생크림을 미리 휘핑해 냉장 보관해 두면 작업이 끊기지 않는다. 단, 생크림은 부칠 크레이프가 완전히 식은 뒤에 발라야 한다. 따뜻한 크레이프에 바르면 크림이 녹아 층이 무너진다.
4단계. 크레이프 한 장씩 얇게 부치기
코팅 팬을 약불로 달군 뒤 키친타월에 기름을 살짝 묻혀 닦듯이 코팅한다. 국자로 반죽을 한 국자 떠 팬 가운데 붓고, 곧바로 팬을 돌려 반죽을 얇고 둥글게 펼친다. 가장자리가 살짝 들뜨고 윗면 물기가 마르면 뒤집어 10초 정도만 더 익힌다.
불은 끝까지 약불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센 불에서는 색이 진하게 나고 가장자리가 바삭해져 쌓을 때 갈라진다. 한 장 부칠 때마다 접시에 겹쳐 올려 식히되, 사이에 종이를 끼우지 않아도 서로 붙지 않는다. 20장을 목표로 부치면 굽다 찢어지는 몇 장을 빼고도 케이크를 충분히 쌓을 수 있다.
5단계. 크레이프 식히고 골라내기
부친 크레이프는 완전히 식혀야 한다. 미지근한 상태에서 쌓으면 크림이 흘러내려 단면이 지저분해진다. 식히는 동안 크기와 모양이 가장 반듯한 장을 맨 위와 맨 아래용으로 따로 빼 둔다. 가운데 층에는 조금 찢어지거나 모양이 덜 예쁜 장을 넣어도 단면에서 티가 나지 않는다.
6단계. 크림 바르며 켜켜이 쌓기
접시에 크레이프 한 장을 깔고 휘핑한 생크림을 한 스푼 떠 가운데부터 가장자리 쪽으로 얇게 펴 바른다. 크림은 가장자리에서 1cm 정도 남기고 발라야 위에 한 장을 더 올렸을 때 옆으로 새지 않는다. 과일을 넣는다면 이때 얇게 저며 한 켜 깔고 다시 크림으로 덮는다.
이 과정을 20겹이 될 때까지 반복한다. 한 층씩 올릴 때마다 손바닥으로 가볍게 눌러 공기를 빼고 높이를 고르게 맞추면 단면이 곧게 선다. 크림이 얇을수록 층이 선명하게 드러나므로, 한 번에 두껍게 바르기보다 얇게 여러 겹 쌓는 쪽이 보기에도 단면에도 좋다.
7단계. 냉장 고정하고 자르기
다 쌓은 케이크는 랩을 씌워 냉장고에서 최소 2시간, 가능하면 반나절 이상 굳힌다. 크림이 차게 안정되면서 층이 단단히 고정돼 깔끔하게 잘린다. 자를 때는 칼을 뜨거운 물에 데워 물기를 닦고 한 번 그을 때마다 다시 닦으면, 크림이 칼에 끌려가지 않아 스무 겹이 또렷하게 드러난다.
핵심 3줄 요약
- 반죽은 박력분과 우유를 약 1:3으로 잡아 묽게 만들고, 냉장에서 30분 이상 휴지시켜 글루텐을 안정시킨다.
- 약불을 유지해 한 장씩 얇게 부치고 완전히 식힌 뒤, 가장자리 1cm를 남기고 크림을 얇게 발라 20겹을 쌓는다.
- 다 쌓은 케이크는 냉장에서 2시간 이상 굳히고, 데운 칼로 잘라야 스무 겹의 단면이 또렷하게 드러난다.